종묘(宗廟)

종묘(宗廟)의 입구를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향나무

망묘루(望廟樓)는 제향(祭享) 때 임금이 사당을 바라보며 선왕을 추모하고, 종묘사직과 백성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라고.
향대청 건물과 고려 동민왕 사당과는 거의 붙어 있습니다.



고려 공민왕의 신당.
그림을 잘 그린 왕이라는 이름에 걸맞데 그의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고려의 개혁군주답게 비록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만 죽어서도 신으로 부활해
남한땅에만 그를 모시는 사당이 100군데가 넘는다고.

제례에 바칠 향 · 축문 · 폐백(香祝幣)을 보관하고 제례를 주관하는 제관들이 대기하였다는 향대청(香大廳)


향대청(香大廳) 내부의 모습



제사상의 모습. 소고기, 양고기 그리고 돼지고기가 익히지않은 상태로 고기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신주(神主)의 모습. 가장 왼쪽이 임금, 그 다음이 제 1정비(正妃) 그리고 다음이 제 2 정비 순이라고....


제정(祭井), 제사와 관련된 음식을 만들때 사용되던 우물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물이 말랐고 병자호란 당시 제기(祭器)를 챙기지 못해이 우물에 넣고 흙으로 묻었다고.

전사청(典祀廳)의 모습. 제사에 사용할 음식을 준비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건물뒤의 공간에서 제사에 사용할 동물을 도축하였는데 도축하던 칼에 궁상각치우의 음을 내는 방울이 달려있었고
칼의 이름이 난도였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난도질하다라는 말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종묘의 중심구역인 정전

공신당의 모습. 우측의 건물은 칠사당

세종대왕 때에 이르러 신주를 모실 공간이 부족하게 되자 세종은 정전 바로 옆 서쪽에 영녕전을 짓도록 했답니다. 영녕전은 ‘왕가의 조상과 자손이 함께 길이 평안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유교의 예법에 따르면 국가의 도읍지에는 반드시 세 곳의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하는데 세 곳이란 왕이 머무는 궁궐과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 종묘, 그리고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으로 조선을 세울 때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곳이 바로 종묘였다고 합니다. 임진왜란때 소각되었지만 광해군때 복원하여 궁궐보다도 더 오래된 조선 건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는데 비 내리는 날, 그리고 눈이 많이 내린 후의 풍경은 너무 좋아 출사장소로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재거 다니면서 느낀 점은 가을 단풍도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입장료는 1,000원이고 토요일에만 자유 관람이 가능하고 나머지는 모두 해설사와 하께 해야하는데 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것도 매우 좋습니다. 토용일에도 자유관람이 허용되었다고 하지만 곳곳에 해설하시는 분들이 있어 그냥 따라 다니면 자유관람도 가능하고 해설도 들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