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서오릉 명릉(明陵)
명릉의 홍살문입니다.
이 홍살문은 아나 죽운 자와 산 자의 공간을 구분한다고 언제가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헌관이 제례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배위(拜位)라고 하네요.
종묘에서는 이런 곳이 왕이 쉬던 곳이었다고 하던데...
능에서 제사지낼 때 사용하는 중심 건물이라는 정자각(丁字閣)
명릉으로 가는 길. 임금님이 걷던 어로(御路)로 걸어다니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갑지기 임금님은 걸어갔는지 가마를 타고 갔는지가 궁금해지네요,
종묘에서도 가마를 타고 다녔다니 어쩌면 이곳도
정자각 왼쪽의 인원왕후의 묘.
인원왕후는 생전에 명릉에서 400여보 떨어진 곳에 미리 묻힐 자리를 정하였으나,
영조는 새로 산릉공사를 해야 하는 것(당시 영조의 첫 번째 왕비 정성왕후의 홍릉을 공사하고 있던 상황)을 염려하여
명릉 서쪽 언덕에 자리를 선정하고 필요한 인력과 국고를 줄여 산릉공사의 부담을 덜었다고.
원래는 왼쪽에 서열이 높은 분의 무덤이 들어서는 것이 정석이라고,
수복(守僕)방.
수복(守僕)은 조선 시대에, 묘(廟)ㆍ사(社)ㆍ능(陵)ㆍ원(園)ㆍ서원(書院) 따위의 청소하는 일을 맡아보던 구실아치를 말한다고
(구슬아치는 하급관리를 일컫는 말이라고 합니다.)
조선 숙종의 둘째 계비 인원 왕후(仁元王后)의 능(陵)
왼쪽이 숙종(肅宗) 오른쪽이 인현왕후(仁顯王后)의 능입니다.
숙종은 능역 조성에 드는 인력과 경비를 절감하여 부장품을 줄이고,
석물의 치수도 실물크기에 가깝게 하는 등 간소하게 조성되었는데
이는 이후 왕릉의 형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고.
봉분에는 병풍석을 두르지 않았으며, 팔각 장명등도 사각으로 바뀌었다고.
나무들이 멋집니다.
석물들의 크기가 좀 작아보이기는 합니다.
숙종임금의 신도비
정자각의 뒷모습. 왕의 시신을 능에 모시기전에 이곳에 잠시 안치했다고 합니다.
정자각의 옆모습. 지붕 아래 부채꼴로 달려있는 마름모꼴의 판자는 비가 들이치지 못하도록 한 시설이라고 합니다.






재실(齋室). 재실은 응참봉이 상주하던 곳으로 제례때에는 제관들이 머무르며 제사준비를 하는 곳이라고.
이곳은 명릉의 재실로 원래 능 하나에 한 개의 재실이 있는데 서오릉에는 이곳만 남아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