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서오릉 대빈묘(大嬪墓) - 그 유명한 장희빈의 묘역
희빈 장씨(禧嬪 張氏, 1659년 11월 3일 (음력 9월 19일) ~ 1701년 11월 7일 (음력 10월 8일), 장희빈(張禧嬪) 또는 옥산부대빈 장씨(玉山府大嬪 張氏)는 조선 시대의 제19대 왕인 숙종의 빈(嬪)으로, 제20대 왕 경종의 어머니이다. 숙종 임금보다는 2년 연상으로 본명은 장옥정(張玉貞),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아버지는 역관 출신인 장형이며, 어머니는 장형의 계실인 윤씨이다. 조선 왕조 궁녀 출신으로 왕비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여인.
1701년 음력 10월 8일 사사된 희빈의 무덤은 처음에 양주 인장리(仁章里, 지금의 경기도 구리시 일대)에 있었는데 여러 사람들이 묘자리가 불길하고 결점이 많다고 하여 1718년(숙종 44년) 음력 2월 20일 숙종은 희빈의 묘를 천장할 것을 명한다. 이후 당시 예조참의가 1년여 간이나 경기도 내에서 길지를 찾아 헤맨 끝에 그해 음력 12월 장소가 수원 청호촌(靑好村)과 광주 진해촌(眞海村, 지금의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문형리)의 두 곳으로 좁혀졌고, 최종적으로 찬반 양론이 있던 수원보다는 광주 진해촌이 좋겠다는 숙종의 결정에 따라 진해촌으로 옮겼다. 이듬해인 1719년(숙종 45년) 천장이 완료되었는데, 천장 때에는 세자(경종)와 세자빈 어씨(선의왕후)가 망곡례를 거행하였다. 희빈은 1722년(경종 2년) 음력 10월 10일 옥산부대빈(玉山府大嬪)으로 추존되고, 절기마다 제사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오면서 희빈의 묘는 거의 폐허와 다름없는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고 1969년 묘소를 통과하는 도로가 생기는 바람에 지금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의 서오릉(西五陵) 경내로 이전하였다. 서오릉에는 숙종의 정비 인경왕후 김씨(仁敬王后 金氏)의 능인 익릉(翼陵),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 민씨(仁顯王后 閔氏) 및 인원왕후 김씨(仁元王后 金氏)가 함께 묻혀있는 명릉(明陵)이 있는데, 여기에 희빈의 묘까지 들어오면서 숙종과 그 왕비 4명은 모두 같은 곳에 묻히게 되었다
다른 릉과 달리 나즈막한 공간으로 이전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묘는 물론 석물까지도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안내문에도 사사(賜死)되었다고 나오나 이는 인현왕후전이나 수문록 등의 소설, 야사에서의 묘사이고 숙종실록 등
정사기록은 주례의 규정에 따라 사사할 수 없음을 언급하고
목을 메어 자결하였음을 알 수 있는 기록들이 존재한다고.
장희빈의 미모는 조선시대 시록에까지 기록되어 있다고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