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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金福童)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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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金福童)

우보(牛步) 2019. 2. 7. 12:37




(사진 : 한겨레신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평화운동가로, 1992년 3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고발했다. 이후 전 세계 전쟁 피해 여성들의 인권 신장과 지원을 위해 '나비기금'을 발족하는 등 인권 운동가로서 활발히 활동해 왔다.  

1926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났으며 14세이던 1940년, 일본군에게 속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김 할머니는 이후 8년 동안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으로 끌려다니며 일본군 성노예로 고통받았다. 그리고 1948년 8월 15일 광복 후에야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2017년에 개봉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김 할머니는 1992년 3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고발했다. 1993년에는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했으며, 이후 미국·일본·유럽 등에서 피해 사실을 증언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촉구했다. 특히 2000년에는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에 원고로 참여해 실상을 문서로 증언하기도 했다.


김 할머니는 2012년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나비기금을 설립하고 전쟁·무력 분쟁지역의 어린이를 위한 장학금으로 5000만 원을 기부했다. 그리고 2015년에는 국제 언론단체가 선정한 '자유를 위해 싸우는 영웅'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넬슨 만델라,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 등과 함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정부는 평화와 인권을 위한 할머니의 노력을 인정해 2015년 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훈장을 수여했다. 또 2017년에는 무력분쟁지역 성폭력 피해자 지원 및 활동을 위한 '김복동 평화상'이 제정되기도 했다.


김 할머니는 2015년 이후에는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를 규탄하며 화해·치유재단 해산과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촉구했으며, 암 투병 중이던 2018년 9월에는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화해·치유재단 즉각 해산’을 위한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김 할머니는 1년여의 암 투병 끝에 2019년 1월 28일, 9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한편 2019년 1월 28일 오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 모 할머니가 별세한 데 이어 김 할머니까지 세상을 떠나면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23명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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