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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길따라

문정전은 특히 왕대비의 혼전(魂殿)으로 활용된 경우가 많는 곳으로 왕이나 왕비의 국상(國喪) 중에는 장사를 마치고 난 뒤, 종묘에 입향할 때까지 신위를 모시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다고. 문정전이 영조의 비(妃)인 정성왕후의 혼전으로 사용되었을 때, 이곳 앞마당에서는 역사적으로 큰 사건이 일어났는데 아버지가 아들을 뒤주에 가두어 죽인 비극적인 사건인 1762년의 임오화변(壬午禍變)이 일어났던 곳이다. 당시 문정전은 혼전이 되면서, 휘령전(徽寧殿)으로 잠시 명칭이 바뀌었는데 영조는 휘령전을 지날 때, 죽은 왕비 정성왕후의 혼령이 자신에게 와서 사도세자를 제거해야 한다고 일렀다고 영조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사실 얼핏보면 궁에 있는 건물중 하나라로 얼핏 보기쉽지만 사도세자가 죽은 곳이라 어린 정조의 물음소리가 들리..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弘化門}] 과거 한때는 동물원인 창경원인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려졌던 창경궁(昌慶宮) 창경궁(昌慶宮)의 처음 이름은 수강궁(壽康宮)으로, 1418년 왕위에 오른 세종이 생존한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은 궁이었다고. 성종 13년(1482) 창덕궁의 수리를 논하는 자리에서 대비전의 세 어른인 세조의 비 정희왕후, 덕종의 비 소혜왕후, 예종의 계비 안순왕후를 모시기 위해 폐허처럼 남아 있던 수강궁 수리를 명하면서 시작되었는데 이때의 확장공사는 성종 15년(1484)에 명정전·문정전·통명전 등 주요 전각을 완공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으며, 그에 즈음하여 이름도 창경궁으로 새로 지었다고. 이듬해 보완공사를 거쳐 궁궐다운 규모를 갖추게 된 창경궁은 창덕궁의 부족한 기능을 일정 부분 보..

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 용이 뛰놀고 봉이 높이 난다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용과 봉의 이야기가 함부로 나올 수는 없고 조선시대 왕과 관련된 장소로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묘가 있는 수원 화산(華山)의 현륭원(顯隆園)을 찾을때 노들강(지금의 한강)에 배다리(舟橋)를 가설하여 건넜는데, 시간이 걸렸으므로 잠시 어가(御駕)를 머물게 하고 쉴 자리가 필요하여 이 정자를 지었다 합니다. 축조연대는 1789년(정조 13) 이후로 보고 있는데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점심을 들었기 때문에 일명 주정소(晝停所)라 부르기도 하였다고. 몇년전에 이곳을 방문했을때는 이웃집과 처마를 대고 있어 깜짝 놀랐는데 지금은 용양봉저정의 관광명소화 공사가 이루어져 있어 주변에 붙어있던 집들은 사라지고 주변 공사가 이어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