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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길따라

흔히 지명을 따서 삼전도비(三田渡碑)라 불리는 이 비의 정식 명칭은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로 조선의 모일모화사상(侮日慕華思想: 일본을 멸시하고 중국의 문물과 사상을 흠모하여 따르려는 사상) 분위기를 우려한 일본에 의해 땅 속에 파묻혔다가 고종 32년(1895) 청일전쟁이 끝나면서 복구되었으나 그후 1956년 국치의 기록이라 하여 문교부(지금의 교육부)에 의해 다시 매몰되었다가 장마로 한강이 침식되면서 몸돌이 드러나자 원래의 위치에서 송파 쪽으로 조금 옮긴 지금의 자리에 되세워졌으며 1963년에 사적 제101호로 지정되었다고, 원래의 위치는 석촌호수의 서호 어디쯤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사실 인조반정으로 오른 인조는 - 개인적으로 조선말의 임금들은 힘이 없어 찌질했을 수 도 있지만 인조의 할아버지 ..

잠저(潛邸)는 나라를 세우거나 임금의 친족에 들어와 임금이 된 사람, 임금이 되기 전의 시기. 또는 그 시기에 살던 집을 말한다고 합니다. 용흥궁(龍興宮)은 조선 철종(1831∼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 19세까지 살았던 집으로 후일 그가 왕위에 오르고 난 이후에 보수하여 단장하고 그 이름을 궁이라고 고쳐부른 이름으로 철종이 살던 집은 원래 초가집이었다고 합니다.. 1844년(헌종 10) 형 회평군(懷平君) 명(明)의 옥사(獄事)로 가족과 함께 강화(江華)에 유배되어 상았다고 하니, 하루하루의 삶이 불안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살던 곳 주변에는 영창대군이 살해되었다는 살창리(殺昌里)도 있고 관청도 있었으니.... 그렇다고 왕이 되어서도 그러했을 것 같습니다. 왕이 되었지만 외척인 안동 김씨 일파의 전..

서울 강서구 마곡동의 서울식물원 겨울철과는 달리 따스해진 날씨만큼이나 녹음도 푸르렀습니다. 옆구리가 결려 운동삼아 걸어가 본 식물원 호수원 지금도 좋지만 아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좋은 모습을 보일 것 같습니다. 호수원 주변의 입장료가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야외공간은 전부 무료입장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전에 야생화 정원도 있었던 것 같은데 다음에 찾아가 보아야겠습니다. 잔디위에서 이름모를 꽃이 반겨 줍니다. 길의 곡선이 아름답습니다. 이른 봄에는 맑은 물이 인상적이었는데 지금은 수초가 자연의 미를 더합니다. 삼미신이라고 하는데 복장이 유럽 복장인 것 같아 보여 약간은 아쉽습니다. 제 눈에만 그렇게 보일수도 있지만 고구려의 건국자 주몽의 어머니 유화부인도 세자매였다고 하던데..... ..

강화도 하점면의 석조여래입상은 10여년 전에도 방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유적이라 시간도 오래지났지만 오히려 더 젊어지신 것 같습니다. 바로 뒤의 하음 봉씨 시조 묘역이 과거에는 뱀에 물릴까봐 접근하기도 어려웠지만 지금은 너무나 깔끔하게 관리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는데 하음 봉씨와 관련된 이 문화유산도 하음 봉씨 가문의 돌봄을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평장사(平章事)를 지내고 하음백(河陰伯)에 봉해졌던 봉천우(奉天佑, 봉씨의 시조 봉우(奉禑)의 5대손)1)가 그 선조에 대한 은혜와 백성을 구호한 덕을 기념하고자 하늘에 제를 올리는 대(臺)와 사찰을 지었다고 하며 석상각(石像閣)에는 봉씨 종친회에서 마련한 석상각 전기가 걸려 있고, 이 곳에 봉씨의 시조를 모시게 된 내력이 적혀 있는데 돌담 입구 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