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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길따라

김포 덕포진(金浦 德浦鎭) 역사관. 지금은 코로나 19로 인해 문이 잠겨 있습니다. 진과 돈대. 강화도에 가면 아주 여럿 있는데 김포에도 있습니다. 조선의 화포는 염하의 폭만큼 사정거리가 길지 않아 강화와 김포 양쪽에서 화포를 쏘아야 염하를 적의 배가 지나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김포 덕포진(金浦 德浦鎭)은 1866년(고종 3) 9월 병인양요(丙寅洋擾) 때는 프랑스 함대와, 1871년 4월 신미양요(辛未洋擾) 때는 미국 함대와 치열한 포격전을 벌였던 곳으로 1980년 포대 ·돈대 및 파수청(把守廳) 터의 발굴조사에서 1874년에 만든 포와 포탄, 조선시대의 화폐인 상평통보 및 주춧돌과 화덕 등이 출토되었다고. 덕포진(德浦鎭)으로 오르는 계단, 상당히 외진 곳이었는데 야외공연장 시설도 있었습니다. 생각와로..

외포항의 배들 망양돈대 들어가는 길 갈매기들이 여럿 모여 있습니다. 애들은 새우깡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대기중인지, 닻이 엄청 큽니다. 망양돈대 오르는 길에는 진도개 조각과 제주도 돌 하루방이. 삼별초를 기념하는 상징물이라고 라는데 ‘고려사’ 배중손 열전에는 구포(仇浦)에서 출발했다고 하는데 이 구포가 어디인지는 아직 알 방도가 없다고. 삼별초를 기념하는 비와 안내문 정말 그들이 호국정신이 있었다면 정규군이 아닌 사병이 되었을까? 어쩌면 과거 군부정권에 의해 과대포장되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망양돈대 오르는 길 바다가 보입니다. 앉아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의자도. 망양돈대의 돌들은 대부분 새로 가공된 돌들 같습니다, 예전 용진진에서 뵈었던 강화도 토박이 어르신의 말씀에 의하면 진이..

사실 처음의 예정지는 고려시대 삼별초가 진도로 떠났다는 망양돈대였으나(사실 이때는 돈대가 없었겠지요) 지나치고나니 조금은 바로 다른 돈대가 나옵니다. 망양돈대보다는 조금은 규모가 작은, 돈대란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영토 내 접경지역 또는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마련해두는 초소로 대개 평지가 높은 곳에 마련해두며, 밖은 성곽으로 높게 하고,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해둔다고 합니다. 삼암돈대는 바다를 향해 약간 돌출한 산의 정상부에 있는데, 육지 쪽으로 산을 등진 주변의 지형은 비교적 평탄한 편이지만, 해안 쪽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네모난 평면을 이루고 있는 다른 돈대와는 달리 평면이 원형이라고. 외포리에는 두 개의 돈대가 있는데 아마 맞은편의 석모도에도 이와 ..

강화도에는 외적의 침입이나 척후 활동을 사전에 방어하고 관찰할 목적으로 접경 지역이나 해안 지역에 흙이나 돌로 쌓은 방어 시설이 많은데 진을 제외하고도 돈대만 54군데라고 하니 참 많기도 많습니다. 강화도의 진이나 돈대를 보면 강화도의 동쪽 다시 말하면 염하(鹽河)라고 불리는 강화도의 동쪽의 방어시설은 규모가 크고 서쪽의 방어시설은 규모가 작은 특징이 있습니다. 예전 문화해설가님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원인은 수심과 조수간만의 차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분오리 돈대는 들어가는 입구에 사진 찍기 좋은 명소라는 안내문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돈대로는 오르는 길이 모두 봉쇄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군시설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돈대 옆에는 갯벌로 유명한 동막해수욕장이 있어, 더운 여름에는 놀러 가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