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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길따라

허가바위 또는 공암바위로 불리는 이곳은 1991년 12월 24일 서울특별시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되었는데 굴의 크기는 가로 약 6m, 세로 약 2m, 높이 약 5m로, 10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구멍이 있기 때문에 공암(孔岩)바위라고도 한다고. 양천 허씨(陽川許氏)의 시조 허선문(許宣文)이 동굴에서 태어났다는 설화에 따라 양천허씨의 발상지로 알려졌는데 경기읍지(京畿邑誌)에 따르면 허선문은 지금의 경기도 김포시 양촌면인 공암촌(孔岩村)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고려의 태조가 견훤(甄萱)을 정벌하러 지나가면서 강을 건널 때 도움을 주고 군량미를 제공한 공으로 공암촌주(孔巖村主)가 되었다고 한다. 강서구의 최초 지명이 제차파의현(齊次巴衣縣)이었는데 제차는 차례 또는 갯가, 파의는 바위라는 뜻으로 보아..

양천 허씨로 널리 알려져 있는 양천 허씨의 지조 허선문과 관련된 곳입니다. 허선문(許宣文)은 김수로왕비 보주태후(普州太后) 허씨의 30세 손으로 고려조 고려개국벽상공신(高麗開國壁上功臣)이었으며 양천허씨의 시조(始祖)인데 대대로 공암현(孔巖縣:공암은 서울 양천의 옛 이름)에 살면서 농사에 힘을 써 거부가 되었다.(사실 한강 하구에서 수상 무역을 바탕으로 세력을 형성한 인물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 설이 더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고려 태조가 후백제 견훤(甄萱)을 정벌할 때 군량이 부족하여 위기에 처했는데 군량을 보급하여 군의 사기를 회복케 하여 견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왕건은 그의 공을 크게 치하하며 가부(假父)라 칭하고 공암을 식읍으로 하사하였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