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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21대 왕 영조(英祖 재위 1724~1776)의 원비인 정성왕후(貞聖王后) 서씨(1692~1757)의 무덤으로 영조는 정성왕후의 능지를 정하면서 장차 함께 묻히고자 왕비릉의 오른쪽 자리를 비워두었고, 석물도 쌍릉을 예상하여 배치하였지만 정조가 홍릉 자리를 버려두고 동구릉(東九陵) 내 원릉(元陵)으로 영조의 능지를 정함으로써 오른쪽 공간은 빈 터로 남게 되었다고.

조선 제8대 왕 예종(睿宗 1450~1469, 재위 1468∼1469)과 계비 안순왕후(安順王后) 한씨(1445~1498)의 무덤으로 5개의 조선 왕릉(경릉·창릉·명릉·익릉·홍릉)으로 이루어진 서오릉(西五陵, 사적 제198호) 경내에 있다. 서오릉에 가장 먼저 들어선 것은 덕종의 무덤(경릉)이지만 덕종이 왕으로 추존되기 이전의 무덤이어서 조성 당시에는 왕릉이 아니었고. 서오릉에 조성된 최초의 왕릉은 창릉으로, 왕과 왕비의 능을 서로 다른 언덕 위에 따로 만든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형식이라고. 좌측이 예종(睿宗)의 릉이고 우측이 안순왕후(安順王后)의 능이라고 2020.08.13일 현재 보수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자각 좌측으로 예종(睿宗)의 릉이 보입니다. 장희빈의 묘역에서 작은 언덕(산)을 너머야..

희빈 장씨(禧嬪 張氏, 1659년 11월 3일 (음력 9월 19일) ~ 1701년 11월 7일 (음력 10월 8일), 장희빈(張禧嬪) 또는 옥산부대빈 장씨(玉山府大嬪 張氏)는 조선 시대의 제19대 왕인 숙종의 빈(嬪)으로, 제20대 왕 경종의 어머니이다. 숙종 임금보다는 2년 연상으로 본명은 장옥정(張玉貞),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아버지는 역관 출신인 장형이며, 어머니는 장형의 계실인 윤씨이다. 조선 왕조 궁녀 출신으로 왕비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여인. 1701년 음력 10월 8일 사사된 희빈의 무덤은 처음에 양주 인장리(仁章里, 지금의 경기도 구리시 일대)에 있었는데 여러 사람들이 묘자리가 불길하고 결점이 많다고 하여 1718년(숙종 44년) 음력 2월 20일 숙종은 희빈의 묘를 천장할 것을 명한다...

서오릉은 조선 왕조의 능이지만 사실 구경하다보면 능들이 주는 감흥은 거의 대동소이합니다. 모양도 비슷하고. 하지만 많은 능으로 조성된 이곳은 나무들이 멋지고 크기가 상당히 커서 걷기에는 참 좋은 곳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경릉(敬陵)은 조선 세조의 아들이자 성종의 아버지로, 1455년(세조 1) 세자(의경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왕위에 오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 1471년(성종 2) 왕으로 추존된 덕종(德宗 1438~1457)과 덕종의 부인 소혜왕후(昭惠王后 1437~1504)의 무덤으로 서오릉에서 가장 먼저 조성된 능이라고. 일반적으로 왕이 오른쪽, 왕비가 왼쪽에 모셔지지만 경릉에서는 왼쪽에 왕릉, 오른쪽에 왕비릉이 있는데 이는 세상을 떠났을 때의 신분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소혜왕후(昭惠王后)는..

조선 제19대 왕 숙종(肅宗 재위 1674~1720)의 원비인 인경왕후(仁敬王后) 김씨(1661~1680)의 무덤으로 숙종이 왕릉의 능제를 단순화하고 석물을 간소하게 제작하라고 명하기 전에 조성된 능이라고. 왕비 혼자 묻힌 곳이라서 그런지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의 거리가 가깝웠으며 특이하게도 주변에 무엇에 쓰던 물건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의 손을 탄 돌이 많이 보였습니다. 수복방 정자각으로 오르는 계단 아마 신분에 따라 사용하는 계단이 결정되었겠지요. 두 개의 돌들이 자연스러운 형태는 아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