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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정문 본문

나들이/서울

숙정문

우보(牛步) 2019. 9. 22. 00:03


서울성곽을 이루는 사대문(四大門) 가운데 하나로, 도성의 북쪽 대문이다. 1396년(태조 5) 9월 도성의 나머지 삼대문과 사소문(四小門)이 준공될 때 함께 세워졌다. 원래 이름은 숙청문(肅淸門)으로, 도성 북쪽에 있는 대문이라 하여 북대문·북문 등으로도 부른다.

1413년 풍수지리학자 최양선(崔揚善)이 지맥을 손상시킨다는 상소를 올린 뒤에는 문을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하였다. 이후 숙청문은 음양오행 가운데 물을 상징하는 음(陰)에 해당하는 까닭에 나라에 가뭄이 들 때는 기우(祈雨)를 위해 열고, 비가 많이 내리면 닫았다고 한다.

 

도성 북문이지만, 서울성곽의 나머지 문과는 달리 사람의 출입이 거의 없는 험준한 산악지역에 위치해 실질적인 성문 기능은 하지 않았다. 1968년 1·21사태 이후 청와대 경비를 위해 일반인의 접근을 금지하다가, 2006년 4월부터 서쪽 성곽 0.5㎞, 북쪽의 진입로 0.6㎞ 구간과 함께 다시 일반에 개방하기로 하였다. 1963년 1월 21일 서울성곽에 포함되어 사적 제10호로 지정되었다.


 


숙정문과 숙빈 최씨


숙정문의 음기를 받기 위해 숙빈과 후궁들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 주변의 이목을 피해 몸종 하나만 데리고 숙정문 나들이에 나섰다고 하는데 장희빈의 등쌀에 기를 펴지 못하던 숙빈 최씨는 숙종으로부터 성은을 입어 아들을 낳았으니 그가 바로 훗날 조선 21대 임금 영조대왕으로 등극한 연잉군으로 믿을 수도 없고 안 믿을 수도 없는 이러한 일이 벌어지니 숙정문의 음기는 입소문을 타고 서울 장안을 넘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고.


조선왕조에서 소나무를 심어서인지 숙정문 주변에는 유독 소나무가 많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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